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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AR146

하나님이 선호하시는 의사소통 방식과 일하는 방식: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훈련하시기 위한 방식

Preached: 21 Aug 94 ▪ Edited: 5 Mar 09


이 장에서는 하나님이 확실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은 덜 극적이고 덜 분명한 방법을 통해 의미 있게 말씀하시는 게 가능할 경우에는 그 방법을 더 선호하신다는 진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내가 사용하는 “하나님이 선호하시는 의사소통 방식”이라는 표현은 이것을 또는 저것을 하라고 우리에게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실제로 전달하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선호하시는 의사소통 방식과 우리 삶 속에서 일하시는 방식을 볼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선호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와 소통하실 수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특정한 진리와 교훈들을 깨닫게 해주실 수 있다. 그 진리와 교훈들에 대한 영적 통찰력을 갖게 하시고 보다 분명한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을 써야 할 영역들에 관심을 갖게 하시고 우리가 배운 진리와 교훈을 바탕으로 좀 더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돕고 계신다는 사실을 잘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이 선호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와 소통하실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 기도의 방향을 인도하시고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영역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신다.

의사결정을 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우리가 고려해야 할 관련된 원리들과 사안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심으로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충분히 잘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특정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 없거나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잘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성숙한 영성을 보여주는 바람직한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짐작하면서 음성을 듣는 것처럼 좀 더 확연해 보이는 인도하심을 원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 것인가? 음성을 듣는 것이 더 나은가?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해주심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는 것이 더 나은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에 대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요소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 너머로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인식하고 주어진 환경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태를 파악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성취되어야 하며 교회 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며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지 등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들을 성경을 통해 알려주셨다. 그러나 그런 진리와 원리들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영적 지각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극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이장에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방식이 하나님이 오늘날, 특히 성경을 접할 수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실 때 선호하시는 방식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극적인 의사소통 방식에는 위험과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극적인 의사소통 방식에는 위험이 따른다. 예를 들면 음성을 듣게 되면 우리는 그 음성이 주님의 음성인지 아니면 성대모사를 하는 사탄의 음성인지를 잘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탄은 극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의지하려는 사람들을 쉽게 속일 수 있다. 사탄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이라 생각하고 부지중에 사탄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면 결국 하나님의 일에 손해가 되는 일들을 행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사탄의 영적 속박에 놓이게 됨으로 우리의 삶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디모데후서 3:16-17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유일무이한 책이다. 성경은 우리가 전심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마음에 새기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내용과 교훈을 담고 있는 유일한 책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토대로 하고 있다.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에 순복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이 우리와 소통하고 싶어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진리를 알려주실 수도 있긴 하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무진장한 진리를 풍부하게 드러내주셨는데 그 진리에는 다음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 하나님의 성품과 특성과 하나님의 방법
  •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이유와 인간을 향한 목적과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
  •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고 성취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
  • 인간의 타락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
  • 영적 전투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방법
  • 인간의 도덕적, 영적 수준의 중요성
  • 그리스도와 성령과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공급
  • 교회의 역할과 바람직한 교회 생활
  • 하나님의 나라
  • 타락한 세상에서 모든 선한 일을 하며 열매 맺는데 도움이 되는 도덕적, 영적 원리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싶어 하시는 모든 영적 이해와 풍부한 진리는 직접적인 계시가 아니라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더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계시해주시는 것이라고 우리가 짐작하는 것들은 그것이 어떤 것이건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등불에 비추어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 권위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 맞는지 또 우리 자신이나 사탄에게서 나온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주된 이유는 진리의 객관적인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기초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탄이나 거짓된 가르침이나 인간적인 연약한 생각이나 감정에 현혹되어 속임을 당하는 일로부터 자신을 좀 더 잘 방어할 수 있다.

성경에 계시된 진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또 어떻게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성경에 나타난 진리를 아는 통찰력을 가지고 그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성경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배우는 것 또한 어떤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3. 덜 극적인 의사소통 방식에는 더 많은 참여와 더 많은 이해가 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을 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면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잘 살피고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정확하게 지시하지 않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영적인 원리들을 토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말과 행동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노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하게 되고 영적으로 성숙하면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해 하나님이 마음을 쓰시는 관심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영적으로 성숙하고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는 일에 관심을 쏟으신다.

덜 극적인 형태의 의사소통 방식은 좀 더 극적인 형태의 의사소통 방식에 비해 거짓에 현혹되거나 자기 주관에 빠지는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좀 더 믿을만한 방식이다.

예를 들면 특정한 문제와 관계가 있는 사안이나 요소들을 고려하면서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이 문제를 기도하면서 생각해 봤어요. 이런,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제가 이런 결정을 내리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라고 말하며 그들과 상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근거가 있는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다른 사람들과 상의하면서 관련된 문제들을 논의할 수 있고 또 함께 그 결정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또 성경을 읽는 동안 특정한 진리와 영적 원리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되면 하나님이 특정한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 그 진리와 원리를 사용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진리와 원리를 그 적용 방안과 함께 논의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우리가 결정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사실 유익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독단적이 되거나 “바로 이거야”라고 장담하는 위험에 덜 빠지는 대신 개방적이 되고 “이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아요.”라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과 상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주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로 그 특정한 방향으로 인도하시는지를 좀 더 분명히 알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하나님이 절 아프리카로 인도하시는 게 분명해요.” 라거나 “이 사람과 결혼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대담하게 장담하지만 그런 그들의 주장이 타당한 것인지를 확인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런 상태에서는 그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속임수에 현혹된 것인지를 검토하기도 쉽지가 않다.

“하나님이 자매와 결혼하라고 하셨어요.”라고 말하는 형제 때문에 조언을 구하는 자매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주장 이외의 다른 정보 없이는 그 형제와 결혼하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뜻인지를 확인하기는 매우 힘들 수 있다. 또 그런 주장을 하는 형제의 구애를 거절함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게다가 정말로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우리를 현혹하려는 속임수인지를 논의하기도 힘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그 형제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를 물어볼 수 있다. 그 질문을 통해 그 형제의 주장이 정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일방적인 바람이거나 아니면 속임수에 현혹된 것인지를 상당히 분명하게 알아낼 수 있다. 특정한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알 수 없을 때는 급하게 그 일을 행동으로 옮기려 해서는 안 된다. 특정한 주장을 하는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그저 따라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진리를 전하시는 방법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성경은 실제로 둘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문제와도 관계가 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와 교훈과 훈계와 경고 중에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또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하신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님의 대변인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서언과 함께 경고하고 훈계하는 경우를 매우 자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들은 선지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인 경우도 있었고 또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향한 말씀일 경우도 있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는데 그 때 그 말씀은 선지자 자신의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선지자들조차도 때로는 자신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다 헤아리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모세를 통한 지시

율법과 성막을 짓는 일에 대한 자세한 지시는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명령하신 좋은 사례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세에게 분명하게 말씀해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성막을 지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자세하게 지시하셨고 백성들은 지시를 받은 대로 그대로 정확하게 성막을 지었다(출 39:42-43).

예레미야에게 그리고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

예레미야서 1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 1:4-5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 진술은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에게 자신은 어린 아이인지라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말씀드리자(렘 1:6)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예레미야 1:7, 9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보내기로 작정하셨고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지시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입에 두셨다.

다음 구절들은 하나님이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야 할 말을 분명하게 알려주시며 아주 확실하게 명령하신 말씀의 내용을 보여준다.

예레미야 2:1-2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예레미야 3:1
그들이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남편이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아니하겠느냐 하느니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서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7:1-4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예레미야 8: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의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예레미야 8:4, 13
4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오바댜의 묵시

오바댜서 전체는 기본적으로 묵시록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오바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오바댜 1:1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나라들 가운데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와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오바댜의 묵시”라는 말은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라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영적인 체험을 하던 오바댜에게 말씀이 임했고 그는 그 말씀을 묵시라고 묘사했다. 그 말씀은 오바댜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었다.

말라기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경고

말라기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고 있다.

말라기 1: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말라기서는 말라기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말라기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가 섞인 말씀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말라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히 전달하고자 하신 정확한 내용으로 모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말라기 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말라기 2:1-2
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말라기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말라기 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또 말씀하실 수 있으며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또한 그렇게 하셨고 또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구약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신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들인 사도들을 통해 진리와 교훈과 권고와 경고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전달하신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고 처음에 소개하는 서두가 없다는 점이 신약 성경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 소개말이 없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신약 성경에서 선택하신 의사소통 방식이다.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권고와 교훈은 편지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서한들 속에는 하나님이 직접 분명하게 말씀하신 지시나 말씀이 거의 없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내 백성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사도들도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되풀이 해 전달하지 않았다.

그보다 서신서나 서한들은 사도들이 특정한 상황에 처한 그룹이나 특정 개인에게 쓴 것들이다. 사도들은 그들이 마음을 쏟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관련된 환경과 그 환경과 결부된 사안들을 파악하고 그 문제들을 언급했다. 그들이 편지에 쓴 내용은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그들이 쌓은 영적 지혜와 그들이 도달하게 된 영적 성숙으로부터 나온 것들이었다. 서신서의 내용은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삶을 통해 나온 것들이었다.

그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바울의 서신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그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거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편지를 쓴 사람은 바울이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게” 쓴다고 말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는 바울이 쓴 다른 서한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듯이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1-2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린도전서 1:10-13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10-13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고린도 교인들을 훈계한 장본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울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였다. 그는 당면한 상황을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그들에게 말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삶 속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다양한 국면들에 대한 염려를 표현했다.

고린도전서 3:1-2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서 나타나는 패륜도 지적하며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린도전서 5:1, 3-5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또 6장에서는 형제를 법정에 송사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린도전서 6:1, 5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그는 또 결혼 생활에 대한 가르침도 주고 있다.

고린도전서 7:1-2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그리고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영적 은사와 관련된 문제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전서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다양한 문제를 지적하며 자신의 견해를 그들과 함께 나누었다. 그는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갈라디아서 1:1-2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갈라디아서 4:1절에서는 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갈라디아서 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징벌하면서 그들을 책망하였다. 신약 성경의 서신서에서는 바울 사도가 신자들을 책망하고 있는 사례들을 볼 수 있다. 바울이 쓴 갈라디아서에서 우리는 갈라디아에 있는 신자들을 책망하고 있는 바울을 볼 수 있다.

갈라디아서 3:1-3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이 책망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책망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마암아”(갈 1:1)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해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이 서신서에 쓴 내용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시는 내용과 일치한다. 그 서신서들은 사도가 편지를 쓴 특정 무리의 사람들이나 교회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그 서신서들은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과도 관계가 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사도들의 서신서들은 특별한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도들이 쓰긴 했지만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서한들도 있고 그 서한들의 비중과 권위는 서신서들의 비중과 권위와 같을 수 없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것은(서신서들이 신약 성경의 일부가 된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진리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아 가는데 필요한 기초를 형성하기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그들이 교회 생활을 포함해 어떻게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이룰 수 있는지 등의 중요한 문제들을 드러내주고 있는 바울의 서신서들은 그 내용이 매우 풍부하다. 바울의 편지들은 하나님이 바울 사도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정확하게 어떤 것을 쓰라고 말씀하신 방식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그 편지들은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배우고 알게 된 것을 여러 교회에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의 서신서들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알게 되기를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은 바울 자신이 이해한 의미와 실체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그 한 예로 고린도전서 7장에서 내가 관찰한 구절을 살펴보기로 하자.

고린도전서 7: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바울이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라고 말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처녀에 대해 말하라고 명하지 않으셨고 다만 바울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그는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내 의견을 말한다.”라고 썼다. 바울의 의견은 보잘 것 없는 것도 아니고 세속적인 것도 아니다. 그의 의견은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나온 믿을만한 것이다. 그 의견은 하나님이 그에게 가르치신 것과 그가 이르게 된 고매한 영적 수준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한 의견이다. 그는 그 특정 사안에 대해 자신이 알고 이해한 대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바울은 “주께 받은 계명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대신 그는 자신이 알게 된 것으로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일치하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 바울이 영적으로 옳지 않다면 그리고 그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면 그가 말한 의견은 믿을만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서신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바울이 쓴 서신서처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쓴 서신서들도 특정한 상황들과 그 상황들과 관련된 중요한 원리들과 문제들에 대해 그들이 알고 있는 바를 따라 기록되었다. 그 사도들이 기록한 내용은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영적 지혜와 지식과 그들이 얻게 된 영적 권위를 토대로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일하시고 의사를 전달하시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몇 가지 원리들을 신약 성경에서 이끌어낼 수 있다. 사도들은 위대한 영적 이해와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역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고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사도들이 기록한 서신서들을 통해 알리고자 하셨고 따라서 그들이 쓴 서신서들이 성경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포함될 수 있게 하셨다.

그 서신서들은 중요한 기록이다. 계시의 중요한 원천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기초가 되는 기록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사도들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또 우리를 통해서 일하기를 원하시는 방식은 구약 성경 시대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진전을 이루어 왔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영적인 이해를 가지고 사람들과 환경과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언제나 정확하게 지시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그 지시를 따르고 그 말씀을 그대로 되풀이해서 말해야 한다면 그리 의미가 크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교제와 참여와 우리의 성장과 성숙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지금까지 내가 설명한 방식이 하나님이 선호하시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면서 성취해나가는 일에 의미 있는 한 부분이 될 수 있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말씀하시는 매우 분명한 지시를 받게 된다면 그 지시를 받은 사람은 영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그 일은 실제로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알뿐 아니라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진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진리가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우리 삶 속에서 드러나고 실천된 진리를 토대로 삼아야 한다.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섬김을 통해 좀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말로 진리를 전할 뿐 아니라 영적 생명과 실체를 가지고 진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화되면 될수록 우리의 섬김은 그만큼 더 효과적이 될 것이다. 삶을 통한 진리의 전달은 말 뿐 아리라 구체적인 삶으로부터 흘러나온다.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변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충성된 대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사역을 돌아보면서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분명하고 확실한 영적 체험을 하고도 삶의 질이나 수준은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또 그런 경험이 영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가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내적 자질을 키우고 예수님의 고귀한 성품을 닮아가고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하셨던 그 친밀함을 본받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슈들을 신중하게 잘 생각하는 것 - 성장 과정의 매우 중요한 한 요소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곤경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수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나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자. 우리가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과 실수를 하는 것이 성숙이라는 전 과정에서는 오히려 뜻 깊은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매우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매번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를 지시하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이나 이슈들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에게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때 하나님이 “이것을 하라.”고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뜻이 이미 알려져 있다면 그 뜻을 행하는 것 그 자체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가 성숙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일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지 않으실 때는 우리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며 관련된 문제들을 잘 생각해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우리가 확신할 수 없거나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조심하고 관심을 기울이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관련된 사안이 중대할 경우 더욱 그렇다.

조심하고 책임의식을 가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 유익하다. 관련된 문제들과 교훈들을 두루 깊이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다시 말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지혜로운 대처가 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노력 자체가 우리가 성숙하고 배우는 과정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하길 바라신다. 따라서 이 영역에서 우리는 안일하게 생각하거나 소홀하거나 나태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우리가 배울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 성경에서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교훈들이 우리를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딪히는 상황 속에서 성경의 교훈들을 어떻게 잘 적용할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기 원하신다. 이 과정을 잘 소화할 때 우리 마음이 새로워진다. 그리고 성경의 진리와 교훈들이 점점 더 우리 삶의 일부가 된다.

비록 실수를 한다 해도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고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각각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손길로 함께 하시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할 경우에는 우리의 실수가 불러오는 부정적인 결과가 완화될 수 있도록 일하기도 하신다.

자녀 양육에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나 정확하게 지시하는 것이 정말로 바람직한가? 자녀들이 관련된 문제들을 깊이 생각해보도록 격려해 주고 특정한 범위 안에서 자녀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자녀들이 실수를 할 경우에도 그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고 그 경험을 통해 좀 더 잘 대처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물론 중대한 문제들일 경우에는 부모로서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위험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경우에는 자녀들을 인도하고 지도하는 일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의 유익과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온전하신 지혜를 따라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신다.

영적 지혜와 지식에서 자라감

이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은 또 우리가 영적인 지혜와 지식과 영적 수준에서 자라고자 노력하는데 격려가 된다. 또 영적인 지혜와 지식을 높이 평가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 사실은 성경의 가르침과 성경이 강조하는 부분과 일치한다. 영적인 지식과 지혜에서 얼마나 잘 성숙하는지는 우리의 자세와 도덕적 자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식과 지혜를 격찬하고 있는 잠언서 1장과 8장을 살펴보자. 잠언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잠언 1:1-5, 7
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지혜는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3절). 지혜에는 도덕적인 면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 구절은 우리가 지혜로워지고 지식을 쌓고 어리석거나 미련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잠언 1: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잠언 1:24-28, 31, 33
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33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이 구절들은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을 경시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에게 부딪히는 모든 상황을 어떻게 잘 감당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우리는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성숙하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성숙하는 일은 하나의 과정이다. 따라서 시간이 걸린다. 지혜가 필요할 때만 지혜를 구할 수는 없다. 지혜와 지식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우리 삶 속에서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성숙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지혜가 필요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없게 된다. 33절은 지식과 지혜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제 8장으로 넘어가 몇 구절을 살펴보기로 하자.

잠언 8:8, 12-13
8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12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이 구절 역시 도덕적 요소가 지혜와 결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지혜는 정의와 분별력과 신중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교만과 오만과 사악함과 패역과는 거리가 멀다.

잠언 8:17-21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19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
20 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지혜와 지식을 사모하고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가지고 지혜와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 지혜에는 진정한 부와 명예가 따르고 하나님 나라의 장구한 재물과 공의라는 유익이 함께 따른다.

지혜와 지식을 따르는 삶은 풍성하고 복된 삶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는 삶이 된다. 그러나 지혜와 지식을 거절하면 죽음과 파멸로 끝나게 된다.

잠언 8:34-36
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지혜와 지식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바울이 에베소와 골로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한 내용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그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영적 지혜와 지식 을 가지고 성장하기를 기도했다(엡 1:17-18; 골 1:9).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선호하시는 의사소통 방식을 내가 언급한 것은 그 방식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고 그 안에서 자라도록 격려해주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방식의 진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을 알아보기로 하자.

예수님이 말씀으로 알려지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1:1)? 그 중요한 한 이유는 의사소통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진리를 전달하신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진술하고 있는 히브리서 1:1-3절을 살펴보기로 하자.

히브리서 1:1-3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옛적에는 하나님이 선자자들을 통해 여러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셨던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시다(히 1:3). 예수님의 이 온전하신 실체로부터 나온 예수님의 사역과 삶을 통해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은 완전하고 순전한 진리를 우리에게 전달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신적 진리와 실체가 인간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또 인간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간성이 내면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신적 진리와 실체를 흐리거나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성품을 충실하게 드러내고 나타내신다. 예수님은 빛과 진리시며 하나님의 본체를 정확하게 보여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순전한 진리를 온전히 그대로 전달하시고 그 의미를 풍성하게 전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한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우리 역시 하나님을 드러내는 충실하고 효과적인 대리인이 되길 원하신다. 신성한 삶과 진리가 그 깊이와 그 풍성함 그대로 우리 삶 속에서 점점 더 실체로 드러나야 한다. 그 실체가 우리 삶을 통해 표현되고 실현되면 될수록 우리는 이 땅에서 점점 더 하나님의 충실하고 효과적인 대리인이 되어 간다.

하나님의 대사로서 우리는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그러나 그 선포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셨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동과 우리 삶의 모든 면모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고 싶어 하신다.

그리스도의 참 대사가 되기 위해 우리는 우리 내면에 있는 실체로부터 흘러나오는 말로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가? 배우고 자라고 의미와 생명력과 실체를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그런 삶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면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되고 우리 삶이 달라진다. 그리고 점차로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살아가게 되면 우리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충성된 자녀들과 대사들을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삶과 생명의 실체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싶어 할 것이다.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으려면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능력으로 섬기고 우리가 말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속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전서 4:11절과 에베소서 3:16절에서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가 권면하고 있는 내용이다.

베드로전서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에베소서 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잘 배우고 잘 성숙하기로 마음을 정해야 한다.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은 순간적인 영적 경험이 아니고 특별한 경우를 위한 것도 아니고 지속적인 경험이 되어야 하며 실제적인 삶이 되어야 한다. 속사람이 강해져야 하고 영적으로 성숙하고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힘만으로 그렇게 한다면 별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해야 한다.

골로새서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바울 사도는 자기 안에서 힘 있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자신이 어떻게 수고하고 힘썼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힘을 다하고 수고한 바울을 본받아야 한다.

데살로니가후서 1: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는 주 안에서 잘 자라는 것에 초점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변화를 받게 되고 하나님이 합당히 여기시는 방식대로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의미 있게 수행하시는 자리에 함께 있게 될 것이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20:27-29절에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요한복음 20:27-29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도마는 주님을 보았다는 다른 사도들의 말을 믿지 않고 의심했다.

요한복음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예수님은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손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그 앞에 나타나셨다. 도마가 그 앞에서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자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29절)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나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는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시는 주 예수님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타당한 근거가 없는 말을 듣고도 그 말을 그저 믿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다(고후 5:7). 우리가 그렇게 행하는 것을 배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눈에 보이는 극적인 영적 경험들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지나치게 감동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시가 된다. 또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 무언가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분별력 있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록 눈에 보이는 확실한 형태는 아니라 할지라도 진리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방식을 깨닫고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을 보여주는 표시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고자 하는 온당치 않은 욕구에 대한 경고

마가복음 8:12절에서 우리는 마음 속 깊이 탄식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탄식하셨다는 말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중요한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하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었다.

마가복음 8: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완악한 마음을 가진 그들은 표적을 보고 싶어 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보다 확실한 형태로 나타나길 바랐다. 그들의 그런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깊이 탄식하시며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12:39절에서도 예수님은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마태복음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우리 삶을 대하는 전반적인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하자. 맞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방식을 더 잘 알고 싶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잘 성숙하고 싶다. 그러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는” 것처럼 깜짝 놀랄만한 일이나 확실한 무언가를 바라는 온당치 않은 열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

밖으로 그럴듯하게 드러나는 것들이나 눈길을 끌만한 극적인 일이나 영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들에 지나치게 감동하거나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의미와 실체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키우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완벽한 지혜를 따라 놀라운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합당히 여기시는 방식으로 일하시도록 하나님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정말로 중요한 일에, 즉 잘 성장하는 것을 배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일에 동참할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될 수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 삶을 깊이 생각하자.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올바른 태도와 마음의 동기를 가지고 참 지혜와 지식 안에서 자라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어 하시는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하나님과 잘 협력하고 있는가?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문제들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는가? 이 타락한 세상에서 참되고 충성되고 효과적인 하나님의 대사가 되는 것을 배우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는가?



1. 하나님이 확실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은 덜 극적이고 덜 분명한 방법을 통해 의미 있게 말씀하시는 게 가능할 경우에는 그 방법을 더 선호하신다. 이 진술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라.

하나님이 오늘날 이런 방식을 취하시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

2.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통해 진리를 전달하신 방식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진리를 전달하시고 그들 안에서 일하신 방식을 생각해 보라. 그 방식들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3.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진리를 전달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그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충성되고 효과적인 대사가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어떤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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