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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AR141

정말로 강한 사람과 정말로 약한 사람

Preached: 8 May 94 ▪ Edited: 26 Feb 06


1장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힘과 권력을 손에 넣는 일에 전념하고 있으며 인류 역사가 권력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권력을 남용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또 하나님의 사람들이 강한 사람들이 되기를 하나님이 바라시는데 그 이유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제로 잘 살아가는데 지극히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장에서는 정말로 강하고 힘이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계속 생각해볼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강했던 사람들과 정말로 약했던 사람들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정말로 강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강해져야 한다.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를 살펴보기로 하자.

골로새서 1:9-11
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성도들을 능하게 하시기를 기도했다. “모든” 이라는 말과 “하나님의 영광의 힘”이라는 말에 주목하라. 다시 말해서 그저 약간의 힘을 맛보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그 힘을 가져야 하는? 10절은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11절은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며 그 어떤 어려움이 따른다 해도 변함없이 그 길을 갈 수 있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강해져야 한다.

진정한 힘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오게 된다.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위임하셨다. 그리고 그 사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위해 우리에게 맡기신 중요한 책임이기도 하다. 그러나 효과적으로 진리를 증거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한다.

정말로 강하다는 것과 정말로 약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성경에 기록된 두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그 두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상황들 속에 적용할 수 있는 원리들이다.

느부갓네살과 다니엘의 세 친구(단 3:1-30)

느부갓네살은 거대한 제국의 왕이었다. 그는 금으로 신상을 만들고 모든 백성은 그 금 신상에 절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그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않는 사람은 활활 타오르는 풀무 불 속에 집어 던져 넣으라고 지시했다(1-6절).

그 당시에는 왕이 명령을 내리면 신하들은 그 명령을 따라야 했다. 왕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형벌이 가해졌다. 느부갓네살은 힘과 권력을 가진 자리에 올라 있었고 백성들은 그의 명령과 지시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땅에 살고 있던 몇 명의 유대인이 금 신상에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소식이 왕에게 전달되었다.

다니엘 3:12-15
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에게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느부갓네살 왕은 몹시 화를 내며 풀무 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 더 뜨겁게 하라는 명을 내렸다(19절). 그런 다음 그의 병사들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해 활활 타오르는 풀무 불 속으로 집어던지라고 명령했다(20절). 그리고 병사들은 그 명을 집행했다.

다니엘 3:21-23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이들 중 정말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정말 약한 사람은 누구인가? 답은 분명해 보인다. 강하고 힘이 있는 사람은 느부갓네살이었다. 포악한 왕 앞에 선 다니엘의 세 친구는 아무 힘도 없어 보였다. 그들의 목숨이 왕의 손에 달려 있었다. 왕은 그들에게 사형을 명할 수 있었고 그 세 사람은 그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처지였다.

우리도 이 세 친구처럼 강력한 힘과 권세를 가진 사람 앞에서 아무 힘도 없고 매우 무력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각이 옳은 것인가?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시는가? 하나님 편에서 바라볼 때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극도로 화를 내고 있는 그 대 제국의 포악한 통치자인가? 아니면 아무 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세 사람인가?

아무 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취했던 매우 담대한 대처에 주목해보라.

다니엘 3:16-18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이 풀무 불에서 자신들을 건져내실 거라고 장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건져내실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건져내지 않으신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이 건져내실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풀무 불 속에서 타 죽어야 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금 신상에게 절하는 대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기로 작정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볼 때 결국 약한 사람은 느부갓네살이었고 강한 사람은 세 친구였다. 느부갓네살은 자기중심적이었고 자제력이 없었고 감정에 치우쳤으며 그의 포악한 행동은 분명히 진리에서 벗어난 처신이었다. 반면에 세 친구의 대응은 칭찬받을 만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신실함을 보여주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자유롭게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실 수 있었다.

이제 그 세 친구가 극렬하게 타오르는 풀무 불 속에 집어던져진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다니엘 3:24-27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하나님이 그 세 친구를 기적적으로 보호하셨다. 불타오르는 풀무 불 속에서 그들과 함께 있었던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모습을 본 느부갓네살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라고 말했다. 필시 말씀(Logos), 곧 성육신하기 전의 예수님이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그 세 친구를 구해내시며 능력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이 사건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고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출 그 자체가 영적인 영역에서 강력한 힘을 지니는 하나의 증거이다. 그리고 그 증거가 가지는 힘의 구체적인 양상은 그 세 친구의 삶 속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는 용기와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확신과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담대하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셨다. 그들은 정말로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 사건이 느부갓네살에게 미친 영향을 보라. 26절에서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28절에서는 세 친구가 참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며 그 참 하나님이 바로 그들을 도우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그가 깨닫게 된 상황을 볼 수 있다.

다니엘 3: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이 28절에서 볼 수 있는 느부갓네살의 고백과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라고 빈정대면서 그가 물었던 15절을 대조해보라. 이제 그는 세 친구를 구원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 사람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때 그는 몹시 화를 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들을 달리 보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신뢰했고 또 그 하나님에게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참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섬기지 않을 것이며 또 절도 하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신념을 지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세 친구가 취했던 입장을 이해하게 된 왕은 그들을 칭찬했고 더 나아가 참 하나님을 모욕하는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조서를 내리기까지 했다.

다니엘 3: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이 사건에서 우리는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대 제국의 전제 군주였던 느부갓네살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는 무한한 힘과 권세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실상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그런 무한한 힘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만이 정말로 전능하신 분이시다. 사람, 물체, 어둠의 세력, 환경 등 만유가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우리의 크신 하나님은 그분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뻐하자. 하나님은 바울이 로마서 8:28절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결국 선이 이루어지게 하신다. 이 사실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깊이 감사하자. 그리고 이 사실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자.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요 18:28-19:16)

요한복음 18:21-19:16절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 총독에게 데려간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소환해 심문했고(18:33) 이어 예수님에게 채찍질을 가했다(19:1).

얼마 후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에게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물었다. 예수님이 대답하지 않으시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한복음 19: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빌라도는 자기 마음대로 예수님에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수님을 풀어줄 수도 있었고 십자가에 못 박을 수도 있었다.

언 듯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자신의 권세와 권한을 휘둘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은 약하고 아무 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좀 달랐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하신 대답을 보라.

요한복음 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빌라도의 권한에 대해 위로부터 그에게 주어진 권한이라고 말씀하셨다. “위에서”라는 표현은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 권한을 주지 않으셨다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그 어떤 권세도 부릴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빌라도는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그가 행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러므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시는 것만을 할 수 있었다. 빌라도가 의식했건 의식하지 못했건 간에 그에게는 예수님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궁극적인 힘과 권한이 없었다.

그러므로 잘 살펴보면 사실상 심판대에 선 사람은 빌라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빌라도는 그 상황에서 그가 행한 심판에 대한 심판을 받고 있었다. 빌라도는 자신이 예수님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아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참 심판자는 그 때 빌라도를 심판하셨고 마지막 심판 날에 다시 심판하시게 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과 빌라도의 이 만남을 통해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점에 주목해볼 수 있다.

1. 빌라도의 나약함

빌라도가 예수님을 상대로 강한 힘과 권력을 휘두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는 약한 사람이었다. 마태복음 27:22-26절은 빌라도가 처한 절박한 상황을 잘 포착하고 있다.

마태복음 27:22-26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선동한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빌라도는 민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물을 떠다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말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었고(요 18:38)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자기에게 데려온 것은 그들의 시기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마 27:18).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런 판단과 달리 무리들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허락해주었다.

로마제국은 법과 질서와 공정한 법 집행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총독인 빌라도에게는 법을 지키고 그 법을 공정하게 집행할 엄격한 사명이 주어져 있었다. 그가 아무리 강력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려 해도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준 무죄한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결코 무죄할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빌라도의 아주 나약한 성품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형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면서 그에게는 공명정대함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할 힘이 없었다. 대신 군중의 압박에 굴복하면서 매우 중대한 상황에서 잘못을 범했다. 즉 무고한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었다.

그 상황에서 빌라도는 강한 사람이었는가? 아니다. 그는 나약했고 심지어 비겁하기까지 했다.

2. 예수님의 힘

이제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만유의 창조주셨다. 그러나 침 뱉는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셨고 채찍에 맞으셨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런 끔찍한 대우와 극심한 고뇌를 감수하시면서도 예수님은 평정과 존엄과 신실함을 끝까지 지키셨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12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12:1-4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인내하면서 경주할 것을 우리에게 격려하고 있다. 모든 성도에게는 달려 나가야할 각자의 경주가 앞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인내하며 경주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인내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본보기는 우리가 지치지 않고 낙심하지 않도록 격려해주는 힘이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어떻게 감당하셨는지는 진정한 힘이 어떤 것인지를 정말 놀랍도록 잘 보여준다. 우리가 정말로 강하다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흔들림 없이 진리를 따르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실함을 지키며 잘 감당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강하고 힘이 있고 확신에 찬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쉽게 흔들리고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거만하고 포악했고 강력한 힘을 가진 통치자였던 느부갓네살 왕같은 사람마저도 놀라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권력을 휘두를 때 그는 자신 만만하고 대담해보였다. 그러나 한갓 꿈 때문에 놀라고 불안해했다. 꿈을 꾸고 불안과 두려움에 빠졌던 그의 말을 들어 보라.

다니엘 4:1, 4-5
1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리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4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5 한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였으니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으로 말미암아 번민하였었노라

그 당시 느부갓네살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편안하게 지내고 있었으며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꿈을 꾸게 되었고 그 꿈 때문에 두려워하게 되었다. 다니엘 2:1 절은 느부갓네살이 그가 꾼 꿈 때문에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두려움을 아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한 예를 느부갓네살의 후계자가 된 벨사살에게서 볼 수 있다. 그는 느부갓네살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다니엘 5:1-4절은 그가 천명의 귀족을 위해 베푼 큰 잔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잔치를 벌인 그는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탈취해 온 금 그릇과 은 그릇을 가져오라 명했다. 그 그릇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서였다. 그와 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5절과 6절은 그들이 술을 마시며 금과 은과 구리와 쇠와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고 있을 때 벌어진 사건을 진술하고 있다.

다니엘 5:5-6
5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6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벽에 글자를 쓰고 있는 손 등을 보게 된 왕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는 불안해하며 두려워했다. 6절은 그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마법사들이 그 글자를 읽지도 못하고 해석도 하지 못하자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의 얼굴빛이 변하였고 귀족들도 다 놀라니라”(단 5:9)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느부갓네살과 벨사살은 강하고 자신만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정한 힘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잘 보여주는 사례에 불과하다.

시편 기자가 말했듯이 진정한 힘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시 62:11). 이 사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들이 강해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제한적인 인간의 힘일 뿐이다.

세상이 주는 그런 인간적인 힘은 약하고 믿을 만하지 못하고 쉽게 흔들릴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힘을 갖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신자들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다.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힘과 권력과 안전과 지위와 부와 명예는 사실 허망한 것이 다. 매력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극히 헛된 것이다. 신기루처럼 실망을 주고 잠시 보였다가 해가 뜨면 금방 사라져버리는 아침 이슬처럼 허무한 것이다.

그런 것들은 영속적인 실체,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만 찾을 수 있는 정말로 가치 있는 진정한 것들과는 전혀 다르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은 영존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다.

히브리서 12:27-28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정말로 강한 사람은 기초가 단단한 건물과 같다. 그는 하나님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아직도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매력을 느끼는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의 위세에 압도당하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이 가진 것들을 부러워하고 있는가? 정말로 중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추구하기로 마음을 정했는가?

시편 112편을 읽어 보자.

시편 112:1-2, 6-7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6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7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면 염려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구절에서 “흉한 소문”으로 번역된 단어를 부도덕한 일과 관련된 용어로 볼 수 있지만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다. 이 단어에는 재해, 참사, 그리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일” 또는 “좋지 않은 소식” 등으로 이야기하는 넓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말로 강한 사람은 이런 흉한 소문에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7절이 그 대답을 해주고 있다. “그는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마음을 굳게 정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단단한 기초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흉한 소문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이다(1절).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뢰하고 하나님의 길을 알고 그 길을 따른다면 흔들릴 필요가 없다. 견고함과 신실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그 어떤 상황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4절은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라고 말하고 있다. 어두워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의로운 삶을 살아간다면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이 빛을 비추어주실 수 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의로우신 분이시다.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편이 되신다면 두려워하거나 흔들릴 이유가 없다. 안 그런가?

빌립보서 4:13절에서 바울 사도는 정말로 강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이 “할 수 있다”라고 한 말에는 힘이 있다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할 수 있다”라고 번역된 히브리 단어에는 “힘이 있다, 유능하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1절과 12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자족하기를 배웠고 어떤 형편에도 처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13절에서 그에게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는 하나님이 그에게 바라시는 것들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있다.

이 구절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려움에 부딪히면 그들은 단순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자신들이 잘 감당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이 구절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는 결코 “고백”할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 삶 속에서 구체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미 있는 고백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울처럼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힘을 얻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배우면 된다. 그렇게 할 때에만 그 어떤 상황도 감당할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능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족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흔들림 없이 충실하게 진리를 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진정한 힘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강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날 수도 있고 또 약해 보이고 무력해 보이고 불쌍해 보이기까지 할 수도 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영웅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히브리서 11:32-34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믿음의 사람들은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했다 이 모든 일들은 진정한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진정한 힘이 있음을 누구라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35-38절과 대조해보라. 이 구절도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 여전히 언급하고 있다. 그들도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은 강한 사람들이었다.

히브리서 11:35-38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여자들과 남자들은 약해 보인다. 그들은 고문을 받았고 조롱을 받았으며 채찍에 맞았고 감옥에 갇히고 돌에 맞고 톱에 잘리기도 했고 궁핍했고 학대를 받았고 광야를 유리하며 살기도 했다.

불쌍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충실하면서 이 모든 힘든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고난과 그들이 겪은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강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참고 견딜 수 있었다.

진정한 힘은 살아가는 동안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울 왕을 피해 잠시 도피하는 동안 다윗은 수많은 고초와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며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셨다. 그 때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강했다. 그 이후 다윗은 이스라엘을 정복한 강력한 왕이 되었다. 그 때도 그는 신실하게 하나님을 따랐고 대부분의 경우에 하나님 안에서 강했다.

요셉과 다니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요셉이 종이 되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다. 그 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에도 요셉은 계속 하나님께 충실했다. 이 모든 상황에서 요셉은 하나님 안에서 강했다.

다니엘은 오랫동안 여러 왕을 섬기며 고위직에 머물러 있었다. 다리오 왕 당시 다니엘은 모함을 받았고 그 결과 사자 굴에 던져졌다. 다니엘은 그가 고관이라는 자리에 있을 때나 사자 굴속에 던져졌을 때나 하나님 안에서 강했다.

외적인 상황은 다양할 수 있고 우리는 그 다양한 상황을 감당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더 중요한 핵심은 우리의 내적 실체이다. 하나님 안에서 강한가?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한가? 하나님에게 충실한가?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참고 견딜 수 있는가?

우리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세속적으로 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약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진정으로 강한 사람들이 아니다. 바울은 정말로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힘이 없는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연약함을 감싸주며 자기의 만족만을 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로마서 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정말로 강한 사람이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려 하지도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행복을 무시하지도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 것이다. 자신의 즐거움을 찾으려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고자 하는 사랑이 그 마음의 동기가 되어 움직이게 될 것이다.

로마서 15:2 절에서 바울은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선이 되고 덕을 세우기 위해 그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은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해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우게 해주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 목적이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다음 장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강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볼 것이다.



1.다음 두 사건 속에서 정말로 강한 사람과 정말로 약한 사람은 누구인가?
(a) 느부갓네살과 다니엘의 세 친구(단 3:1-30)
(b) 빌라도 총독과 예수님(요 18:28-19:16)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해 보라.

2. 강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며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3. “내게 능력주시는 자(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선언한 바울의 고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바울은 어떻게 이 고백을 입증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고백을 의미 있게 입증할 수 있는가?

4. 진정한 힘이 나타날 수 있는 각기 다른 방식들을 이야기해보라. 히브리서 11장과 그 밖의 다른 성경 구절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본보기들을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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