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earance and Reality > The Lord Jesus Christ > Truly Strong (3)
previous < 설교 AR142 > next
설교: AR142
Preached: 29 May 94 ▪ Edited: 7 Jul 07
지금까지는 정말로 강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정말로 강해질 수 있는지, 다시 말해서 정말로 강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강해지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다.
먼저 하나님 안에서 강하다는 말에 함축된 두 가지 측면을 구분해보고자 한다.
평소에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지만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경우 하나님을 신뢰하며 큰 힘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급박하거나 비상사태와 같은 어려움에 직면할 경우 더더욱 그럴 수 있다. 또 평소에도 강하긴 하지만 특별한 상황에 부딪혀 더 큰 힘을 내야 할 때가 있다.
특별한 경우에 큰 힘을 발휘했던 한 사례를 사무엘상 30장에서 볼 수 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시글락을 떠나 있을 때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침략했다. 시글락으로 돌아온 다윗과 그를 따랐던 사람들은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아이들이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소리 높여 울었고 더 이상 울 기력이 없게 될 때까지 울었다.
실제로 아주 괴롭고 참혹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크게 절망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야말로 강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한 그런 때이다. 성경은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고 말하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일반적으로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그는 특별히 더 힘을 냈다.
특별한 경우에 힘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늘 강한 것이 우리에게는 보다 더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늘 강한 힘은 한 사람과 그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한 자질이다. 그리고 보다 안정적이고 견실한 힘이다. 늘 힘이 있을 때 우리는 보다 잘 이겨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
특별한 경우에 힘을 발휘하는 것과 일반적으로 늘 힘이 있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늘 강한 사람이 특별한 경우에 큰 힘을 발휘하기가 훨씬 더 쉽다. 반대로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힘을 발휘하는 것을 배우게 되면 일반적으로 늘 강해지는 것도 배울 수 있게 된다.
정말로 강한 사람의 특성들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정말로 강하게 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면으로 좋은 진전을 보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보다 더 안정적이고 견실한 힘을 보이는 일반적으로 늘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은 도덕적, 영적 수준과 매우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영적 수준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관련되어 있다. 이 장에서는 다음 요소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다양한 성경 구절들을 참고하면서 이 요소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우리가 정말로 강해지는데 이 요소들이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
정말로 강한 사람은 실제로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잠언 24:5절은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라고 말한다. 그 말은 지혜가 강한 사람의 중요한 한 특징이며 강한 사람이 되는데 기여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참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참 지식이란 진리를 아는 지식이다.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길을 아는 지식을 말한다. 그런데 정말로 강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비록 그 지식이 참 지식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아는 것을 넘어 그 지식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하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 지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상황에 반응하며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지식과 지혜는 속임수가 주된 공격 형태로 사용되는 영적 전투에서 매우 중요하다. 무지하고 어리석으면 쉽게 속임수에 빠질 수 있다. 지혜와 지식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인지하고 악한 자의 계략과 책략을 파악하고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를 알고 악한 자를 물리치는데 도움이 된다.
진실을 파악하고 인지하는 능력이 참 지식과 지혜의 한 면모이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상황에 부딪히게 될 때 우리는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문제들이 결부되어 있는지, 그 상황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 상황에 올바로 대처하기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힘을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참 지식과 지혜에는 긍정적인 도덕적, 영적 차원이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참 지혜와 지식을 가지려면 하나님이 성경에 드러내신 진리를 단순히 지적으로 인지하는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진리를 우리 삶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로마서 12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2절에서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라고 말했는데 이 권면은 하나님을 위한 구별된 삶을 묘사한(1절)후에 이어서 한 권면이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단지 지적 기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이해와 도덕적 반응이 포함된다. 진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 위해 우리 자신을 헌신할 때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된다. 그러므로 새롭게 된 마음은 우리의 도덕적, 영적 사고방식이다. 진리를 따라 살아가면 갈수록 우리가 더욱 더 새로워지고 더욱 더 변화하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되면 진리를 더 잘 알게 되고 생활 속에서 더 지혜롭게 대처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지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만다면 어려운 상황을 감당하기가 매우 힘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식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되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좀 더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에도 그 문제를 좀 더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지식을 갖게 되길 바라신다.
이사야 30: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이 구절은 우리가 강해지고 싶다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잠잠하고 신뢰하여야”라고 한 말이 “힘을 얻을 것이거늘”이라고 한 말 앞에 나오는 것에 주목하라.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을 구사해보려 노력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온당한 삶을 살지 않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올바르지 않다면, 예를 들어 잘못된 욕망을 가지고 있거나 쓴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그런 태도들을 바로 잡으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하나님을 정말로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믿음이 지혜와 지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도움이 된다. 지식이 바탕이 된 지혜를 가지고 믿음을 구사할 때 그 믿음은 강한 힘을 발휘한다. 진리가 아닌 것을 믿는 믿음은 설사 그 믿음을 발휘한다 해도 효과가 없다. 또 진리를 알면서도 믿음을 구사하지 않는 것 역시 별 효과가 없다.
진리를 근거로 한 믿음만이 그 힘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잘 감당하려면 그 상황에 맞는 원리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을 해쳐나갈 수 있는 온당한 방법과 채택해야 할 바른 자세를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인지하고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 어떻게 보이건, 그 상황이 얼마나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우리는 믿음을 구사해야 한다. 올바른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상황을 헤쳐 나간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그 어떤 상황이라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을 잘 감당하는데 종종 실패하곤 한다. 비틀거리고 넘어진다. 우리가 초조해하고 심란해하고 의심으로 가득 차게 되는 이유는 영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잘 구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것들과 약속하신 것들을 잘 믿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구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우리는 강해질 수 있다.
비틀거리게 되는 상황에 부딪힐 경우도 많지만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들을 파악하고 참 믿음을 구사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면 그런 상황을 좀 더 잘 감당해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격려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구사하면서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것을 배운다면 그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격려를 언제나 의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면 하나님이 인생의 모든 고난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것이다. 우리 삶은 결코 헛된 삶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 삶이 별 볼일 없어 보일 때에도 우리는 좋은 자질들이 우리 안에서 자라고 우리 삶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고 성취하는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특별하고 특정한 상황 속에서 믿음을 구사하는 것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늘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중요한 진리들을 확신하고 그 확신하는 바를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는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진리를 따라 살기 위해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려고 늘 노력하며 회개하는 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진리를 믿고 신뢰하는 잠잠하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느헤미야 8장은 에스라가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서 모세의 율법 책을 낭독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내용을 듣게 된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울며 슬퍼했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슬퍼해야 할 때가 있다. 예수님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4)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런 슬픔이 낙심으로 이어져 영적인 힘을 약화시키고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낙심하지 않도록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말하며 그들을 격려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을 배우게 되면 우리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힘들고 참혹한 상황에 부딪힐 때 낙심할 필요가 없다. 대신 기뻐하기로 마음을 정할 수 있다.
빌립보서 4:4 절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한다. 이 말은 명령이며 또한 권고이다. 이 말에는 주 안에서 기뻐하기로 마음을 정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은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에 부딪힐 때에도 우리가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마음의 자세를 의미한다. 그 마음의 자세는 우리가 특별한 상황뿐 아니라 모든 상황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서 쉽게 일하실 수 있다. 또 우리의 능력이 효과적으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낙심하고 풀이 죽게 되면 잘 생각할 수 없거나 우리 마음이 잘 작동하지 않게 된다. 우리 영혼이 짓눌리게 된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고 그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방해를 받게 된다. 그래서 낙심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해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마음을 정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원치 않는 부정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해도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을 신뢰하는 우리의 믿음을 확고히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의 삶에는 의미가 있고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좋은 교훈들을 얻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이런 긍정적인 자세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일하시면서 우리가 주어진 상황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환경을 조성한다.
정말로 강한 사람은 기도 생활을 질적으로 잘 영위한다. 질적인 기도 생활을 한다는 것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갈 뿐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기도의 능력 역시 기도 생활의 중요한 한 요소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앞둔 마지막 날에 나타나게 될 현상들에 대해 말씀하시며 34절에서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이어 36절에서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이 언급하신 “기도”는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길 힘을 갖게 된다.
마태복음 26장에서도 예수님은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질 힘겨운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 제자들이 경험하게 될 심각한 영적 중압감을 언급하시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시련과 고난과 곤경 속에서 우리는 종종 넘어지기도 한다.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지고 싶지 않지만 거듭 넘어지고 만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것이다.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은 무엇인가? 기도이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연합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육신은 언제나 약하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덧입어 육체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다.
마태복음 26:41절에 기록된 기도는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심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간구하는 측면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권고하신 대로 항상 깨어 기도하는 측면이다. 기도의 이 두 번째 측면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가 깊어지고 우리의 기도 생활이 향상되고 우리의 속사람이 강해진다.
항상 깨어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되면 “자원하는 마음”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강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약한 육신이라 할지라도 점점 강해지면서 그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영적 전투는 계속된다. 그래서 항상 기도해야 한다. 특히 극심한 영적 방해와 모진 시련을 경험하게 될 때 더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한다.
기도와 하나님 안에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이 사실은 마태복음 26:41절에도 암시되어 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강해질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다윗이 곤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힘을 냈던 사실에 주목했다(삼상 30:6). 그런데 다윗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아마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의 자세와 깊은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도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그 믿음을 구사하는 삶을 통해 주님 안에서 힘을 발휘했다.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늘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고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각자 기도하면서 힘을 얻을 수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서도 힘을 얻을 수 있다. 에베소서 3장에서 우리는 신자들을 강건하게 하시기를 간구하는 바울의 기도를 볼 수 있다.
에베소서 3:14-16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를 강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우리의 자질과 성품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얼마나 닮았는지에 따라 우리 성품의 성숙도가 달라진다. 우리는 우리의 도덕적 성품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전체적으로 개발하면서 그 어떤 요소도 경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성품을 얼마나 잘 개발하는지는 하나님과 얼마나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지, 하나님과 얼마나 깊이 교제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리스도를 얼마나 닮아가고 있는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 우리 성품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얼마나 자유롭게 우리를 가르치시고 강하게 하시고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일하실 수 있는지와 깊은 관계가 있다.
에베소서 3:16절을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기도했다. 바울의 이 기도는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된다. 바울은 우리 스스로 강해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강하게 해주실 것을 기도했다. 그런 강하게 하심은 “속사람” 안에서 일어난다.
진정한 힘은 우리의 육체적 근육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우리의 지식이나 기술이나 재능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리고 그의 풍성함을 따라 속사람을 강하게 하실 때 우리는 진정한 힘을 갖게 된다. 그 힘은 우리의 영적인 자세와 성숙뿐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또 우리의 속사람과 관계가 있다. 정말로 강한 사람에게는 영적인 시련과 곤경 속에서도 잘 견디고 참아낼 수 있는 영적인 능력과 끈기가 있다.
바울의 기도는 17-19절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에베소서 3:17-19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구절은 하나님 안에서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16절)믿음과 성품과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라고 기도한 것을 보면 하나님 안에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믿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성품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 사랑은 좋은 성품의 중요한 한 요소이다.
또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우리가 강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와 우리의 성품을 더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또 반대로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우리 성품이 잘 개발되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점점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쌍방적으로 상호 관계를 맺고 있다.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라고 기도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거하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이미 성도들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성도들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에 대해, 다시 말해서 점점 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삶과 성품의 변화는 그리스도와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리스도와 얼마나 연합하고 있는지, 또 그리스도의 주권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얼마나 자유롭게 드러내실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삶을 내어드리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바울은 연이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바라시는 것으로 영적, 도덕적 수준의 목표이며 하나님과의 연합이 추구하는 목표이다.
속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강해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정말로 강한 사람에게는 이 성령의 열매들이 늘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점점 더 강해짐에 따라 이 자질들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성령의 열매 중 내가 특히 강조하고 싶은 한 자질은 바로 절제이다. 우리가 얼마만큼 절제할 수 있는지는 우리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한 지표이다. 절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리를 지키고 몸과 마음으로 그 진리를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시편 31편에서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시편 31:23-24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2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정말로 강하고 싶다면 그리고 어떤 상황이라도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실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에게 둔 소망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의 확신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즉 하나님의 능력과 지식과 지혜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에게 충실한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인해 우리는 시련과 영적 압박 속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우리가 영적으로 얼마나 강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얼마나 견고한지를 알아보는데 도움이 되는 매우 중요한 한 요소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에베소서 3:18-19상반절을 다시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강한 사람이 되고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과(엡 3:16) 관련된 진리의 또 다른 한 측면을 볼 수 있다. 이 측면은 알고 깨닫고 터득하는 일과 관계가 있다. 바울은 신자들이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게 되기를 소원했다. 그런데 바울이 어떤 것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알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17절에서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고 18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래서 19절의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그리스도의 사랑과 연관된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해석이 문맥상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대신 바울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바울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와 이 19절 상반절을 연결시키는 것이 더 의미 있는 해석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는 데 대한 바울의 깊은 관심이 에베소서의 핵심 주제이다. 이 주제가 사역의 중심에 있다. 그리고 그 주제가 이 구절 이전의 구절 속에 반영되어 있다. 그 구절을 살펴보기로 하자.
에베소서 3:8-11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바울에게 맡기신 사역에는(9절)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과(8절) 교회를 통해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각종 지혜와(10절)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이(11절) 그 중심에 놓여 있다.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의 속사람이 강건하여지고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알게 되기를 기도했다. 따라서 19절의 이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과 그와 관련된 이슈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품으신 뜻과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과 그 일을 이루시는 방법과 그 방법이 어떻게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풍성함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게 되며 하나님의 각종 지혜가 교회를 통해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지 등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하나의 연결 고리이다(17-18절). 그리고 그 진리들과 사실들을 더 잘 이해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것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깊고 풍요로운 거룩한 사랑)을 알게 되고 점차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19절). 하나님의 부르심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며 쉽게 변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깊은 확신과 강한 열의를 가진 사람들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 망설이지 않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전반적인 것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하나님의 전 계획을, 특히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들을 전반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전 계획,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을 잘 알고 통찰력을 가질 때에만 우리 삶의 모든 면을 잘 이해하고 전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진리 안에서 안정되고 탄력적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게 되면 진정한 믿음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건강한 기도 생활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과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것과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과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있다. 그런 다음 그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신자들에게 주신 은사들을 언급하면서 한 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11절부터 16절에서는 우리가 주 안에서 어떻게 잘 준비되고 잘 성장해나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나타나는 바람직한 결과를 13절과 14에서 볼 수 있다.
에베소서 4:13-14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약한 신자들은 이리 저리 떠밀리고 거짓된 교리 때문에 혼란을 느끼기도 하고 현혹되기도 한다. 사람들을 이리 저리 떠밀리게 만드는 것은 단지 잘못된 교리뿐 만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게 만들고 요동치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도 있다. 사람들의 교묘한 속임수 뒤에서, 다시 말해서 그들의 “간사한 유혹” 뒤에서 움직이는 어둠의 세력과 악한 자의 세력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악한 자를 창세기 3:1절에서는 간교한 자로, 요한계시록 12:9절에서는 꾀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거짓된 교리와 다른 많은 수단들을 동원해 우리를 속이려하는 숙련된 사기꾼이다.
바울은 진리를 잘 알고 전반적으로 온전하게 성숙해 나갈 것을 격려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온갖 교훈의 풍조에 따라 이리 저리 밀려다니는 어린 아이가 더 이상 되지 않을 것이다. 쉽게 흔들리거나 속아 넘어가는 약한 사람도 더 이상 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 안에서 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
지식과 지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또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더 연합하기 위해서도 우리에게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 지식과 지혜는 악한 자와 사람들의 간교함을 포함한 그 어떤 속임수에도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자란다는 것은 성도들을 세우는데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예수님이 교회에 은사를 주신다.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1-12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13절) 이르도록 성숙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세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 성숙은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연합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서 빚어지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 서로의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깊이 알고 그분과 교제하는 관계를 통해 우리는 정말로 강해지고 안정적이 될 수 있다. 또 그 지식과 관계는 우리가 이리 저리 흔들리고 쉽게 떠밀려 다니는 것을 막아주고 변함없이 진리를 따르게 해줄 수 있다.
에베소서 4:15절은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그런 관계와 우리 안에서 빚어지는 그리스도의 형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 16절은 몸을 이루는 각 지체들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결합하여 자라는 것을 서로 연결시키고 있다.
에베소서 4:15-16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또 다른 성경 구절도 있다.
골로새서 1:9-11
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이 구절 역시 지식과 지혜와 깨달음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지식과 지혜가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심과 연결되어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11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은 어려운 상황에 시달리거나 사람들이나 악한 자의 공격을 받을 때에도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취하고 진리를 따라 신실하게 행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 정말로 강하고 참고 인내하면서 신실하게 어려운 상황을 잘 감당해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심을 덧입어야 한다.
바울은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기를” 구하며 그의 기도를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와 총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지혜와 총명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점점 더 깊어지고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됨으로 모든 면에서 선한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또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자만에 빠지지 않고 그런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구절들은 지식과 지혜와 영적 자세와 영적 성숙과 주 안에서 강한 것과 하나님과 연합하고 교제하는 관계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충만해지는 것 등과 같은 중요한 이슈들이 서로 얽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들 이슈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다시 말해서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 연합체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강하고 힘이 있다는 것은 개인적인 야망을 이룰 수 있는 역량과 관계가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에 대해서는 별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강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은 마땅히 그들의 동기와는 달라야 한다. 대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에게 신실하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말하는 정말로 강하다는 말의 의미이며 타락한 세상의 관점과는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정말로 강하기 위해 우리는 건강하고 굳건한 정신과 새롭게 된 마음을 개발해야 한다. 건강하고 굳건한 정신과 새롭게 된 마음은 우리가 절제하고 우리의 감정이나 욕구보다 진리를 먼저 따르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과 진리에 헌신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권력은 타락한다. 그리고 전적인 권력은 전적으로 타락한다.” 라는 말이 잘 알려져 있다. 세상에서 우리가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정한 힘은 타락하지 않는 것이며 또 타락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진정한 힘은 자기 잇속만 차리지 않기 때문이다. 순전하고 정결하고 하나님에게 신실하기 때문이다. 그 힘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다.
정말로 강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이 하나님께 헌신되어야 하고 그 헌신은 진정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헌신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과 하나님과 맺고 있는 우리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
우리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으면 참 지식과 지혜와 믿음과 기쁨과 기도의 능력과 속사람의 강건함과 영적 성숙 등과 같이 정말로 강한 사람이 가지는 다양한 특성들을 제대로 개발할 수 없다.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우리 삶을 하나님께 드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 삶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만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게 된다. 또 그렇게 할 때에만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게 거하시며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능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특별한 경우에서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늘 강하게 될 것이다.
주 안에서 강해지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다. 그 궁극적인 목표는 주 안에서 성숙하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계신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환경들은 우리가 주 안에서 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약 1:2-4)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고 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고 영적인 힘과 끈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진리와 사랑과 지식에 뿌리가 박히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하게 하심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정말로 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다음 질문들을 깊이 생각해 보라. 자신의 삶 속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영역은 어디인가? 기도 생활을 게을리 하고 성품을 개발하는데 무심하지는 않았는가? 지식과 지혜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해왔는가? 하나님의 훈련 과정을 잘 따르고 있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응하며 잘 따르기 위해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를 기도하자. 하나님의 성령께서 자유롭게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가 잘 따를 수 있도록 기도하자.
1. 이 장에서 논의한 주 안에서 강하다는 것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해 이해하게 된 내용을 이야기해 보라. 이 두 측면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2. 다음 요소들이 우리가 정말로 강해지는데 어떻게 기여하는가?
Copyright
The content of this message is protected by Copyright ©2010 Lim Kou. Permission is given to print
and reproduce part (where the meaning intended is retained and the part is not quoted out of context)
or all the content, for personal use or for distribution, on condition that there is proper
acknowledgement, no changes are made and the content distributed free of charge. Please be prayerful
and discreet in distributing or making the content available to others. This paragraph and that below
should be included in any and all content reproduced for distribution.
Scripture Quotations
Scripture quotations unless otherwise stated, are taken from th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
Copyright © 1960, 1962, 1963, 1968, 1971, 1972, 1973, 1975, 1977, 1995 by The Lockman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Appearance and Reality > The Lord Jesus Christ > Truly Strong (3)
previous < 설교 AR142 > next